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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이 중요했다

朝鮮의 新聞은 東京 大阪의 廣告로 사러 나아간다 …
… 그 新聞의 歷史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新聞의 體裁를 보게 되는 …

“조선의 신문은 도쿄·오사카의 광고로 살아간다. … 광고주는 그 신문의 역사만이 아니라 그 신문의 체재를 본다.”1

안석주가 운영한 것으로 보이는 광고사 백영사 百榮社의 자기 광고, 『동아일보』 1921년

글자에서 그림으로

이 연구가 살피는 것이 바로 이 시각적 형태다. 글자뿐인 광고에서 그림 광고까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널리 퍼졌는가.

이 발표가 보여 줄 세 가지
1정교화 수준의 상승은 기존 기업의 변화가 아니라, 처음부터 높은 수준의 정교성을 갖춘 기업들이 새롭게 시장에 진입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2일본계 기업이 정교한 광고로 시작하는 비율은 조선계 기업의 약 세 배였다.
3글자뿐인 광고는 어느 해에도 전체의 약 40%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지면은 정교해졌다

이 상승은 세 가지 방식으로 읽혀 왔다:

  • 양으로: 신인섭과 서범석은 광고 지면의 양을 측정해 꾸준한 성장을 확인했다.1
  • 정밀 독해로: 정용근(Yongkeun Chun)은 가장 정교한 광고들을 분석해 근대적으로 보인 것은 소수 기업뿐이었음을 밝혔다.2
  • 기업사로: 에커트와 맥나마라는 경성방직을 비롯한 최대 기업들을 연구했다.3

이들 연구는 각자의 사례를 깊이 파고든다. 그러나 어느 것도 전체적인 지도를 그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유명 사례가 전체 분포의 어디에 있는지, 무엇이 예외이고 무엇이 평범인지 알 수 없다.

경성방직, 1922년과 1925년 5월

분석 파이프라인

과제

자료는 식민지 시기 세 일간지의 스캔본, 1910년부터 1950년대 초까지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보』.1

전체적인 지도를 그리기 위한 세 단계는 다음과 같다:

1모든 지면에서 모든 광고를 잘라낸다.
2각 광고에서 기업, 상품, 텍스트를 읽어 낸다.
3각 광고의 시각적 정교성을 점수화한다.

모든 광고를 잘라내기

YOLO26-L 객체 탐지기가 지면에서 광고 후보를 잘라낸다.1 탐지기는 과잉 추출하도록 학습된다. 실제 광고든 아니든, 광고일 가능성이 있는 블록은 전부 잘라낸다.

수작업으로 라벨링한 600면으로 학습한 뒤, 전체 133,196면에 적용해 1,197,062개의 크롭을 얻었다.

정밀도 재현율 F1
0.81 0.84 0.82

학습에 사용되지 않은 120면(광고 1,246건) 기준, IoU 0.50, 신뢰도 0.30. F1의 95% 신뢰구간 0.76–0.87.

『조선일보』 1937년. 후보 블록을 모두 잘라낸 모습. 빨간색은 탐지기, 초록색은 수작업 라벨.

광고 하나하나 읽기

비전-언어 모델(VLM) Qwen3-VL-235B가 모든 크롭을 읽고, 그것이 실제 광고인지 판별한다. 광고가 아닌 크롭 546,748개가 걸러진다. 중복과 판독 실패를 제거하면 623,303건의 광고가 남는다. 각 광고는 약 30개 필드의 구조화된 기록으로 전사된다. 그 일부는 다음과 같다:

기업  스즈키 상점 鈴木商店
출신  일본계 업종  식품
상품  味の素 (아지노모토)
헤드라인  料理하시기에 苦心하실 것 없습니다
슬로건  味の素
구성  세로형, 삽화 포함

기업  장미상회 長美商會
출신  조선계 업종  소매
상품  十八種一組 (18종 한 벌)
헤드라인  十五週年記念特別大賣出
슬로건  一組金額
소재지  京城府 (경성부)

0에서 1까지의 점수

  • 비전 모델 DINOv3가 모든 광고의 시각적 정교성을 0에서 1 사이 점수로 매긴다
  • 절대 점수가 아니라 쌍대비교(pairwise comparison)로 학습한다
  • 점수에 반영되는 것은 삽화, 도안문자(레터링), 레이아웃의 작업량이지, 조판이 아니다
  • 인간의 판단과 비교하여 100번 중 93~97번 일치한다
  • 같은 광고의 재게재본들은 0.028 간격으로 놓인다
  • 무작위 쌍은 0.336 간격으로 놓인다

어느 쪽이 더 손이 많이 갔을까?

0.100.999. 누구나 가릴 수 있는 쌍

어느 쪽이 더 손이 많이 갔을까?

0.9980.996. 모델은 이런 미세한 판별까지 배운다

얇은 중간층

  • 구성별로 묶으면 그래프는 글자뿐인 층(~42%), 얇은 중간층(~24%), 삽화 층(~34%)으로 갈라진다
  • 광고의 약 40%는 사실상 글자만으로 구성되었다. 이 선 아래로 내려간 것은 1943년의 39.8%, 단 한 번이다
  • 중간층은 도착지가 아니라 경유지였다. 광고는 글자뿐인 상태로 남거나, 별도의 사진제판 공정으로 옮겨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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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번호 WWC26

1

상승은 새 기업의 진입으로 비롯되었다. 기존 기업의 변화가 아니었다.

광고는 올라갔다

  • 전형적인 광고의 정교성 점수는 1910년대 약 0.4에서 1939년 0.63까지 올랐다
  • 가장 단순한 하위 10%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 상위 4분의 1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두 배 이상이 되었다

기업은 오르지 않았다

  • 기업의 약 60%는 진입 수준에서 ±0.10 안에 머문다

생애 전체로 봐도 마찬가지

  • 진입 수준을 기준선으로 놓으면, 중위 기업의 생애 순변화는 0이다
  • 코호트는 10,617개 기업으로 출발해 해가 갈수록 얇아진다

주역은 새 기업들이었다

  • 1930년대 말에는 모든 정교성 수준에서 신규 기업이 광고의 약 4분의 3을 차지했다
  • 즉, 전체적으로 정교화 상승을 떠받친 것은 새로 진입하는 기업들이었다

2

기업의 진입 수준은 출신에 달려 있었다.

격차는 진입 순간 정해졌다

  • 일본계 기업의 35%는 삽화가 풍부한 광고로 데뷔했다. 조선계는 11%에 그쳤다
  • 조선계 기업 열에 여섯은 글자뿐인 광고로 시작했다
  • 1930년대 말에도 조선계 기업은 여전히 일본계보다 한 단계 단순하게 시작했다

업종과 출신이 함께 외양을 정했다

  • 업종이 근대적일수록 광고도 정교했다
  • 거의 모든 업종 안에서 조선계가 가장 단순했고, 그다음이 일본계, 서양계 순이었다

어느 업종에나 양극단이 있었다

출발에서 갈리고, 그대로 굳었다

  • 일본계 기업이 삽화 중심의 최상층으로 진입한 비율은 조선계의 세 배였다
  • 출신을 불문하고 기업 셋 중 둘은 진입한 층에 그대로 머물렀다
  • 식민지적 격차는 다른 경로가 아니라 다른 출발선이었다

그림에는 판(版)이 들었다

  • 글자뿐인 광고에는 판이 필요 없었고, 공들인 헤드라인도 활자로 짤 수 있었다. 그림은 손으로 그려 판으로 새겨야 했다
  • 그 설비는 드물고 비쌌다. 1930년대 조선계 광고가 그림을 실은 비율은 일본계의 절반 정도였다
  • 현지 공급은 실재했으나 그 비율은 낮았다. 1927년 조선의 디자인·삽화 인력은 프리랜서 한 명이었다

디자인으로 유명했지만, 지면은 단순했다

  • 영화 광고는 도안문자(레터링)의 발전을 이끌었다고 평가된다
  • 정작 영화 광고의 대부분은 단순한 상영 안내였다. 벤허처럼 정교한 최상층에 이른 것은 100건에 1건 정도다
  • 영화업의 디자인에 대한 명성은 실제 지면의 기록을 앞질렀다

유명 사례들의 위치

  • 정용근은 가장 정교한 광고들을 분석하고, 그 세계를 소수 기업만 지속할 수 있었던 ’전시된 근대’라 부른다
  • 전체 척도 위에 놓으면, 그와 신인섭이 꼽은 기업들은 서로 멀리 흩어진다
  • 조선의 대표 사례들은 모두 그래프의 정상에 있는 일본 제국 브랜드들, 아지노모토·모리나가·구라부·라이온보다 아래에 위치한다

상승은 드물었고, 지켜지는 일은 더 드물었다

  • 5천 개가 넘는 꾸준한 조선계 기업 가운데, 글자뿐인 광고에서 정교한 광고로 올라가 이를 지킨 곳은 약 8곳이다
  • 상승한 기업의 셋 중 하나는 올라간 후 다시 내려갔다
  • 잘 알려진 조선계 광고주 대부분은 아예 올라간 적이 없다

정상은 도쿄와 오사카가 채웠다

  • 가장 화려한 광고 가운데 조선계의 몫은 1910년대 절반 이상에서 1930년대 약 5분의 1로 줄었다
  • 정상의 자리는 넓어졌다. 그러나 조선계 기업이 올라간 것은 아니었다
  • 일본 최대의 광고대행사 덴쓰 電通는 1907년부터 경성 지점을 운영했고, 전체 광고 제작의 절반 이상을 맡았다

3

글자뿐인 광고는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기본선은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 글자뿐인 광고는 한 해 광고의 40% 아래로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
  • 조선계 광고는 일본계보다 단순했다. 1940년대 초에는 조선계 광고의 63%가 글자뿐이었다
  • 이는 자본이 취약한 시장의 민낯이었다. 캠페인을 지속할 만큼 큰 조선계 기업은 없었다

해방 후: 단순해진 지면, 그리고 회복

  • 해방 직후는 1910년대 이래 가장 단순한 지면이었다. 1945~46년에는 광고 넷 중 셋 이상이 글자뿐이었다
  • 1949년에는 정교성이 1940년대 초 수준 가까이로 돌아왔다. 대체로 일본 기업들 없이 이룬 회복이었다
  • 광고 기술은 스스로 되살릴 수 있을 만큼 현지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기록은 1950년 전쟁의 문턱에서 끝난다

글자뿐인 약방 광고, 『조선일보』 1946년 3월.

근대적 외양은 기존 기업이 변해서가 아니라
새 기업과 함께 들어왔다.
얼마나 근대적으로 보일지는 출발선에서,
출신에 따라 정해졌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글자뿐인 광고는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참고문헌

Arnold, Taylor, 와/과 Lauren Tilton. Distant Viewing: Computational Exploration of Digital Images. 1st ed. MIT Press, 2023.
Chun, Yongkeun. “Displayed Modernity: Advertising and Commercial Art in Colonial Korea, 1920-1940”. Thesis, Royal College of Art, 2020.
Eckert, Carter J. Offspring of Empire: The Koch’ang Kims and the Colonial Origins of Korean Capitalism, 1876-1945. Korean Studies of the Henry M. Jackson School of International Studies. Univ. of Washington Press, 2014.
McNamara, Dennis L. The Colonial Origins of Korean Enterprise, 1910-1945.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0. https://doi.org/10.1017/CBO9780511528101.
Sin, In-sŏp, 와/과 Pŏm-sŏk Sŏ. Han’guk Kwanggosa 한국 광고사 [The History of Korean Advertising]. Revised 3rd Edition. Nanam 나남, 2011.